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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이야기] 마음의 준비도 했지만… “왜 못해준 것만 생각날까요” – 초롱이편

노견이나 노묘와 함께 몇 년쯤 살다 보면 피치 못하게 이별을 예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온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언젠가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딱 일 년만 더’, ‘딱 한 달만 더’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전력을 다해 사랑했어도 조금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다만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보내주고, 조금 더 너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

 

 

(※ 본 인터뷰는 요청에 의해 얼굴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초롱이 보호자, 어머니 감사드립니다.)

보호자①  이정원 보호자② 어머니

벌써 17년 전 이야기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박스에 담아 버려졌던 새끼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을 때만 해도 17년 뒤의 이별은 오지 않을 일처럼 까마득하기만 했을 것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데에 설렘도, 걱정도 많았지만 생애 첫 강아지 초롱이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Q. 초롱이와의 첫 만남 기억나세요?

초롱이가 저희 집에 온 게 2001년, 그러니까 벌써 17년 전이에요. 누가 박스에 이제 고작 2, 3개월 된 어린 새끼 강아지를 버린 걸 외삼촌이 데려다가 외할머니 댁에서 키웠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케어하시기 어렵다 보니 두 달 만에 저희 집으로 데려오게 됐죠. 그때 아빠 옷 가슴팍에서 고개만 쏙 내민 채로 저희 집에 들어왔던 초롱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눈이 초롱초롱해서 엄마가 이름을 초롱이라고 지었어요.

 

 

Q. 강아지를 키우는 데에 어떤 점이 제일 걱정되셨어요?

가족들이 일하러 나가느라 집을 비우면 초롱이가 혼자 있어야 해서 처음엔 엄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아빠랑 저랑 동생이 강력히 원해서 결국 데려왔죠(웃음). 막상 같이 살다 보니 초롱이가 엄마를 제일 많이 따랐어요. 너무 활발해서 처음엔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워낙 많았어요.

가족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가족들이랑 이야기도 훨씬 많이 하고. 처음엔 반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초롱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예요.

 

Q. 초롱이가 나이 들고 있다는 걸 느끼셨어요?

나이가 들어도 겉으로 티가 전혀 안 났어요. 병원에서도 동안이라고 하시고, 10살 넘을 때까지 잔병치레도 없고 꽤 건강했거든요. 그래서 노령견이라든가, 언젠가 이별을 한다든가 그런 생각은 그냥 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한 2년전부터는 계속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강아지의 1년은 사람의 1년과 다르잖아요. 초롱이도 한해, 한해가 다르더라고요. 아프기 시작하니까 먹어도 살이 자꾸 빠지고 마지막엔 정말 뼈밖에 안 남아서 너무 안쓰러웠죠.

 

이번까지만 더 견뎌줄 수 있기를

어느덧 노령견이 된 초롱이에게는 몇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아픈 개도 힘들고 돌보는 사람도 힘든 시간이고,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 나의 최선을 의심하고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함께했기에, 초롱이는 틀림없이 그 마음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Q. 2년 전부터 어디가 아팠나요?

재작년에 한번 발작이 왔어요. 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MRI를 찍으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나이가 많아서 전신마취가 위험하다는 판단에 약을 먹으면서 꾸준히 관리를 하기로 했죠. 그런데 작년 겨울쯤에 고비가 왔어요. 너무 힘이 없어서 병원에 갔더니 신장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고 해서, 아침에 출근할 때 병원에 맡겨서 수액 맞추고 퇴근할 때 데려오는 걸 일주일 정도 했어요. 사실 그때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계속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해야 했죠.

 

 

Q. 늙고 아픈 반려견을 꾸준히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심장약, 경련약, 간약 등 이것저것 약을 먹어야 해서 약 값이 한 달에 거의 50, 60만 원씩 들었어요. 남들이 보면 개한테 돈을 그렇게 많이 쓰냐고 미쳤다고하죠. 그냥 안락사시키라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힘닿는 데까지는 어떻게든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롱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까 보내주자는 이야기도 가족끼리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초롱이가 살려는 의지가 있어서 약 먹고 버텨주는 거라고 생각해서, 차마 그 손을 놓을 수는 없었어요.

딸이 하루에 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약 먹이느라 친구들을 만나거나 놀러가도 그 시간에는 꼭 집에 왔어요. 직장에 있는 시간에도 틈틈이 홈TV를 통해서 초롱이 상태를 확인하고요.

 

 

Q. 그런 과정 동안에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지요.

몇 번 고비를 넘기면서 1년 이상은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그런 게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Q. 마지막 순간은 어땠나요.

초롱이가 숨 쉬는 게 조금 힘들어 보이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고 검사를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검사해보니 폐렴이 왔대요. 노견에게는 무척 위험하다고 해서 일단 그날 하루는 입원해서 다음날 데리러 갔어요. 그런데 가는 길에 병원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초롱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도착해서 품 안에 초롱이를 안고 잠시 지켜보고 있었고, 제 품에 안긴 채로 떠났어요. 사실 이번에도 이겨내 줄 거라고 생각해서 너무 갑작스러웠죠. 많이 울었지만 혼자 있을 때 간 게 아니라서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Q. 초롱이를 위해서 후회 없을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것 같아요.

병원에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줘서 오히려 선생님이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안락사 해달라고 오는 경우가 워낙 많다면서요. 초롱이 떠나던 날 하도 우니까 선생님이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하지만 후회가 안 남을 수는 없나 봐요.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이 나요. 어떻게 했어도 후회는 남았을 것같아요.

 

 

반려동물 장례, 가족이니 당연하죠

오랫동안 함께한 가족이니 장례식장 역시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었다.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이전에 알아봤던 것도 떠오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합법적인 장례식장을 찾다가 21gram을 알게 됐다고. 픽업 서비스를 알아보는 것부터 마지막 추모 보석을 간직하는 것까지 차근차근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Q. 장례를 치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뭔가요?

가족이니까요.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법적으로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는데 그건 너무 싫었어요. 20년 가까이 같이 산 동생인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건 애초에 처음 키울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Q.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어떤 기준으로 찾아보셨나요?

재작년에 한번 위험했던 시기가 왔을 때 찾아본 적이 있어요. 합법적인 곳이 있고 불법적인 곳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런데 검색해 봐도 어디가 합법인지, 어디가 불법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장례를 아무데서나 치러주고 싶진 않았어요. 간혹 여러 아이를 같이 화장시킨다는 곳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합법적인곳을 찾다가 21gram을 알게 됐어요.

 

 

Q. 21gram 서비스가 어떤 점에서 제일 도움이 되셨나요?

제일 좋았던 건 일일이 찾지 않아도 제대로 된 장례식장을 바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저희가 새벽에 상담을 했는데도 친절하게 잘 받아주신 것도 감사했고, 바로 시간대를 알아보고 예약을 할 수 있어서 편리했어요. 장례식장을 선택하는 1순위 조건이 ‘거리’뿐만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주변에서 굳이 장례를 치러야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어요. 너무 비싸지 않느냐고 하면서요. 사실 그렇진 않은데 이런저런 옵션이 추가되면 더 가격이 올라가는 거더라고요. 21gram에서 예약하면 추가 옵션을 강요하지도 않고 보호자에게 선택을 맡기는 시스템이잖아요.

 

 

Q. 장례 후 아이를 기억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저는 유골의 절반은 유골함에 담아 가져오고, 절반은 스톤으로 만들었어요. 일부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유골은 49제 후에 다시 장례식장에 가서 뿌려줄까 해요. 더 가지고 있고 싶지만 친구들이랑 실컷 뛰어 놀라고… 나중에 스톤도 다시 빻아서 뿌릴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보석을 만드는 과정도 믿을 수 있게 보여주며 설명해 주셨어요.

 

 


Q. 17년이나 함께한 아이라 떠나보낸 뒤 많이 허전하셨을 것 같아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도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오히려 그 순간에는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집에 오면 아직도 초롱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요.

사실 딸한테 장례식장에서 그냥 유골을 다 뿌려주고 오라고 했었어요. 유골이 있으면 너무 눈에 선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딸이 49제 동안은 간직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도 방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인사하곤 해요.

 

 

Q. 앞으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보호자들에게 조언해주실 게 있을까요?

병원에서 들은 얘긴데 강아지들은 정말 아플 때가 되어야 표현을 한대요. 그 전까지는 표현을 안 하고요. 그러니까 이상하다 싶을 땐 이미 진행이 상당히 된 상태일 가능성이 많은 거죠. 그러니까 미리 정기검진을 꼭 받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반려견을 키울 때 평생 함께한다는 약속이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도 나이 들 때까지 평생 책임질 수 없으면 키우지 말라고 말해요.

 

너는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였어

가족들은 초롱이가 떠난 이후 더 이상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그러나 이별이 이토록 아팠던 것은 그만큼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Q. 초롱이는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저희 집에 온 이후 내내 정말 온 가족에게 기쁨과 웃음을 많이 줬어요. 초롱이는 아빠 차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았어요. 우리 집 앞에 다른 차가 서면 짖고, 가족들 발소리도 다 알아들었고요. 믹스견이었는데 예쁘고 정말 똑똑했죠.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품종견을 선호하잖아요. 전 그게 좀 싫었어요. 초롱이는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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