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다

[칼럼] 유기묘가 집냥이가 되는 과정

 

침대 위에 아리와 달이가 한가하게 누워 있었다. 모색만 다르지 생긴 게 참 닮은 이 두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으면서도 늘 가까운 자리에 붙어 있다. 하지만 아리는 달이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뭔가 심기가 불편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달이가 눈이 반짝 커지더니 앞발을 휙 움직여 탁! 하고 아리 꼬리를 내리친 것이다. 움직이는 깃털이나 솜뭉치에 반응하는 건 고양이들의 사냥 본능이다.

하지만 졸지에 사냥감이 된 아리는 당연히 기분이 나빠져서 꼬리를 더 심하게 파닥거렸고, 달이는 그 꼬리를 잡으려고 더 재빠르게 앞발을 움직였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리가 몸을 발딱 일으키더니 신경질을 내고 침대에서 내려가 버렸다. 눈앞에 흔들리던 장난감이 사라지자 달이는 시무룩한듯 앞발을 괴고 누웠다.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남의 꼬리나 심지어 자신의 꼬리를 사냥감인 듯 잡으려 드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꼬리를 내줄 마음이 없었던 아리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어쩐지 감회가 새로운 마음으로, 말리지도 않고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바로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달이는 보통 고양이들과 달리 눈앞에 흔들리는 사냥감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보호소에서 4년을 살았던 달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달이는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걸었다. 어디 숨으려고 해도 걸음걸이가 너무 느려서 손만 뻗으면 달이가 잡혔다. 아침저녁으로 구내염 약을 먹여야 해서 몸을 붙잡고 입을 벌리면 피할 생각도 없는 것처럼 순하게 약을 꼴깍 삼켰다. 둘째 아리가 기선 제압을 하려고 째려보면 달이는 슬그머니 눈을 돌리면서 싸울 의지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피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때부터 보호소에 오랫동안 지낸 탓인지 장난감에 반응할 줄도 몰랐다. 보호소에서 봤을 때부터 달이는 퉁명스럽고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양 당시 나는 달이에게 귀여운 면모를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보호소에서 고단했던 삶이 우리 집에 와서 조금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부터 보호소에 지내느라 제대로 집고양이 생활을 해본 적 없었을 것 같은 달이가 좋은 사료와 폭신한 침대, 집안 곳곳의 캣타워와 해먹을 누리면서 그냥 조금 편해졌으면 했다. 그만큼 달이의 지저분한 얼굴과 시큰둥한 표정이 귀엽기보다는 짠했다. 달이에게 보호소보다는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달이를 셋째로 입양하는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뭐랄까, 달이에게 귀여움에 대한 기대가 애초에 없었다고나 할까.

 

 

매사에 멍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누워 있는 달이는 오로지 먹을 것에만 격렬하게 반응했다. 심한 구내염 때문에 분명 먹는 게 불편했을 텐데 보호소에서도 밥만큼은 잘 먹었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달이는 한눈에도 덩치가 큰 거묘로 처음 병원에 데려갔을 때 6kg가 넘었다. 건강을 위해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약간의 다이어트가 필요해 보였지만 먹을 것만 보면 오로지 그것에만 직진하고 달려드니 안 주기도 안쓰러웠다. 달이에게 즐거움이라고는 오직 봉사자들이 묘사에 들어와 사료를 주는 시간뿐이었을지도 몰랐다.

집에서 제이와 아리에게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놀아주면서 혹시 몰라 달이 코앞에서도 낚싯대를 흔들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달이는 마치 그게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장난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지루한 얼굴을 했지만. 놀이는 고양이들의 사냥 본능과 에너지를 채워주는 시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양이에게 강아지의 산책만큼 필요하다. 하지만 달이는 처음에 대부분의 시간을 정적으로 보냈다. 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 최대한 풍부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나로서는 달이가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당시만 해도 나는 달이가 원래 좀 느릿느릿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사람 손길을 전혀 피하지 않을 만큼 순하고, 별 생각이 없는 듯 멍하고, 싸움을 싫어하고, 좀처럼 뛰지 않는 아이.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달이가 앞발을 느리게 움직여 탁! 바닥을 때리면서 장난감을 잡으려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 그 고양이의 뻔한 행동이 나에게는 얼마나 반가웠을 것인가. 달이는 제이와 아리만큼 격렬하게는 아니어도 이제 장난감을 보면 앞발을 뻗는다. 혼자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축구를 하고 놀기도 한다. 아리나 제이가 시비를 걸며 솜방망이를 휘두르면 달이도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때린다(그만 좀 싸워, 애들아). 한밤중에는 세 마리가 다 같이 쫓고 쫓기면서 우다다를 하며, 제이나아리처럼 어딘가에 매복하고는 쫓아가려고 엉덩이를 바짝 들고 기다린다.

 

 

집안이 한결 더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달이가 점차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흐뭇하고 다행스럽다. 달이는 목욕을 시켜도 이상하게 털이 뻣뻣하고 거칠어 원래 그런 종인가 했는데, 얼마 전 세 번째 목욕을 하고 나니 달이의 털이 정말 확연히 드러워졌다. 단순히 몸을 씻어서가 아니라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달이의 귀여움은 그야말로 상상초월로, 이제 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이를 들여다보며 감탄하고 만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왜 이제야 나타났을까?

 

 

그러고 보면 길고양이였던 제이는 당시 어려서 적응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지만, 성묘이자 유기묘였던 아리도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한동안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몸을 벌떡 일으키곤 했다. 지금의 아리는 사람이 지나가든 배를 만지든 좀처럼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뒹굴거린다. 달이도 차차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날렵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느릿하던 달이는 몇 달을 거쳐서야 비로소 우리 집에서 완전히 마음을 열어 뛰고, 놀고, 세상 편안한 자세로 잠들고 있다.

유기묘에서 반려묘가 되는 것은 단순히 가족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 생명을 둘러싼 세계 전체가 바뀌는 일이다. 어쩌면 유기묘를 입양하는 일이 막연하게 꺼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한 생명에게 ‘고양이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주는 커다란 기쁨의 과정이기도 하다.

 

 

각자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에 처음에는 다소 서먹하고 어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눈 마주치고 쓰다듬으면서 자연스럽게 눈빛부터 식성, 생활 습관, 잠자리, 누워 있는 자세까지 하나하나 변화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사랑해서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 고양이들이 속하게 된 세계를 조금 더 안온하게 만들어주고 싶고, 더 나아가면 내가 더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이 작은 동물들에게는 내가 세상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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